성북도큐멘타 8
Seongbuk Documenta 8
김다은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짓는 행위의 안과 바깥에 있는 이야기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nueadkim@gmail.com
푸코에 의하면 “역사란 전통적으로 문서 documents를 이용하여 과거를 재구성하는 학문”이었다. 실증주의적 역사학에서는 역사 연구에서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 역할으로서 아카이브를 규정한다. 그러나 역사란 선별적 승인의 산물이라고 할 때, ‘승인’이라는 가치판단의 구조에서 배제되거나 강조되는 점을 전제로 하여 도큐먼트 수집을 시작한다. 역사 서술의 규범에 의해 재현되는 것 과 재현되지 못한 서사를 발굴해본다.
근현대시기 동안 미아리 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사건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미아리공동묘지 - 원조 달동네 - 미아리텍사스촌 - 재개발 대상지 그리고 뉴타운. 장소의 흔적은 도시공간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역사화 되고 있는지에 대한 지역의 아카이브를 발굴, 수집, 분류, 편집, 배열하여 장소에 대한 ‘다른 방식의 보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특히 아카이브 미술의 주요한 방법론인 차용과 편집, 배치를 통해 기존의 제도적 공간 내에서의 인식 즉 “밀려나간, 배제된 공간 - 미화되어야 하는 공간”의 전복을 시도 해본다. 길음동 - 하월곡동 - 장위동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장소에 대한 텍스트 설계-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해당 지역의 건축물과 구조물을 중심으로 한 각기 다른 시간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는 아카이브의 재편을 통해 장소에 부여된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단일한 의미와 인식 체계를 위하여 배제되거나 은폐되었던 기억의 서사를 발굴 및 구축하여, 아카이브를 통한 공적 기억의 재생산을 도모해본다. 이를 통한 예술적 상상력과 가능성을 품은 서사를 발굴 및 구축하고자 한다.
*본 작업의 기반이 된 웹 구조는 민구홍이 진행 한 강좌 「새로운 질서」 에서의 배움을 따랐다.
김수화
퍼포머, 안무가로 활동하며 공연, 글, 영상을 재료로 작업하고 있다. 동시대 디지털 매체의 재현성과 가상성을 관찰하고 비판적 관점을 품지만 동시에 상상으로 확장 하기를 시도한다.
suhwakim13579@gmail.com
길음동 일대는 재개발이 완료된 구역, 유예 된 구역, 그리고 시선에서 제외된 구역들이 혼재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지정하는 언어들 바깥에서 길음동을 관찰하면 멈춘 곳과 이동하는 곳이 보인다. 시간이 과거에 머무는 집이 있고, 미래를 지향하는 집이 있다. 누군 가는 정착하지만 누군가는 이주해야한다. 반가움과 아쉬움은 어느 쪽이든 있으려니 추측해보다가 그냥 추측을 멈추었다.
삼양로 2길과 동소문로 42길 일대는 미아리 텍사스촌과 맞닿은 골목이다. 나는 인적이 끊긴 이 골목을 주로 돌아다녔다. 있던 것은 머물며 오랫동안 서서히 변형되고, 미세하게 감각을 자극하는 새로운 것이 된다. 가령 냄새가 더 고약해지거나, 거미줄의 형태가 변 하거나, 천이 찢어진 구멍이 더 커지거나, 쓰레기의 부피가 더 커지거나, 동물의 변이 나타나거나, 부패되거나 하는 것과 같은 새로움. 역한 이 감각은 기록에의 가치가 박탈된 것들인데, 돈이 되거나, 아름답거나, 놀랍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과 멈춤, 이동과 정착이라는 양가적 언어 사이 애매한 위치에서 기록을 시작했다.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지켜볼 가치도 없어진 것 같은 더럽고 역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이 어떤 의미있는 일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생각을 엮어 본다.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구분이 무색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인간을 명명하고, 맥락화 하고, 분리시키는 우리의 갈등이 일 어나는 동안 삼양로2길, 동소문로 42길 일대에는 시선에서 제외된 시간이 새로운 물질이 되어 쌓여간다는 상상으로.
신민준
시각예술가 및 문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의 실존을 결정짓는 토대로 서의 사회구조에 대해 흥미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과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예술과 운동을 분리하고 양자택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이를 ‘삶에 대한 태도’로 통합시키며 벗어 났다. 최근에는 동시대 민중적 예술과 예술의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상상과 연구가 관심사다.
artimins92@gmail.com / https://bit.ly/CV_JUN
처음에는 길음동이나 삼양로 방석집, 미아리 텍사스와 같은 지역의 이슈나 소재보다는 파견 예술인의 원래 방향이었던 “공공적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공-예술에 대한 관심과 회의가 들며 곧 고민에 빠졌다.
동시대 미술은 감각의 재배치, 인식의 전환, 전유적 방법의 활용 등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공론과 환기를 해야 한다고 미학자나 비평가들은 주장하지만 이 공론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상한 이들의 취미에 머물지는 않는지, 동시대 사회의 담론을 다루는 예술가들은 정말 사회적 존재인지에 대해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미술이 도대체 의미가 있기는 한걸까? 라는 고민이 있었다. 이러한 고민은 사회-예술의 조응 관계에서 만들어 지는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 리서치 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집결지나 미아리 텍사스에 대한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결지를 바라 보는 입장에 따라 고정된 시선들과 사회적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고착화 된 시선과 나의 안온을 위협하는 압력을 모른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작업이 집결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닐지 혹은 일종의 예술적 강박이나 프레임 워크인,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이전과 비슷한 다른 다큐를 만들게 되는 것이 아닐지도 고민되었다.
결국 이런 문제는 작업 과정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게 하거나, 비판을 두려워해 이야 기를 숨겨놓는 은유로 표현되었다. 그러다 도큐멘타 프로젝트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나눈 대담이 영감을 제공했다. 대담을 나눈 다른 동료들은 “작업(예술)으로서 기록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장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과 의식 속에 감춰진, 사회적 압력과 분위기 속에서 숨기게 되는 욕망이나 주장, 생각에 대해 더 말하고자 했다.
집결지를 이야기할 때 발화자는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대화 속에서 은연 중에 그 사람의 계급 의식이 드러나고 배제가 발생한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이 말들이 그곳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우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이 영화는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곧 미아리텍사스는 재개발되어 해체될 것이지만, 물리적 공간이 사라진다고 해도 구조적 폭력 즉,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집결지는 자본-도시의 사슬로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결지 재개발을 무엇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미아리텍사스, 집결지를 둘러싼 삶과 사회의 토대를 들여다 보고 구조와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 새겨진 삶의 무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오세린
미술작가. 우리 주변에서 건져 올린 소재를 바탕으로 오브제, 영상, 텍스트를 아우르는 확장된 작업 세계를 선보이며 기존의 통념을 관찰하고 재구성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www.serinoh.com / serinoh@gmail.com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태도가 만연한 요즘. 길음·월곡 / 정릉 / 봉천 세 군데의 재개발 지역을 답사하며 이 태도를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오브제로써 무너진 담벼락과 빈집의 깨진 지붕, 조각난 타일, 자갈 섞인 계단모서리 등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원본으로, 실제 사용할 수 있 는 향초 오브제 〈홈 (Fragments) 〉(2021) 시리즈와 리서치 과정을 사진과 텍스트로 담 은 책 1권을 준비했다. 향초에는 천연 밀랍 과 함께 1960년대 산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국과 아카시아 향 오일을 섞었다. 민둥산이 대부분이던 당시 녹화사업을 위해 선정된 나무였다고 한다. 워낙 많이 심어 이들은 당시 산림의 10%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지금도 이 지역에선 5월이면 아카시아 향이 가득하다.
모티브가 된 지역 중 길음·월곡과 정릉은 성북의 대표적인 재개발 지역이고, 봉천은 내가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들은 1960년대부터 철거민, 수재민, 화재민 등이 집단 이주하며 형성된 지역으로, 재개발이 한바탕 있었거나 예정된 지역이다. 작품에 불을 붙이는 순간 촛농이 녹아내리며 형상이 점차 사라지는데, 미약 한 바람에도 촛농의 방향이나 심지에 붙은 불의 세기가 달라져 어그러진 모양이 제각 각이었다.
불이 꺼지면 애매하게 남은 향초의 새까만 흔적과 공간을 가득 채운 아카시아 향만이 남았다. 이 정도가 거대하고 긴 역사가 담긴 이 지역과 떠날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라 생각했다.
2022 성북도큐멘타 공론장
우리는 왜 예술로 지역을 기록하는가
일시: 2022. 11. 04 (금) 15:00~18:00
장소: 미아리고개하부공간 미인도 (성북구 동선동3가 23 동선오피스텔 앞)
사회: 하장호(문화연대 집행위원)
발제: 장유정(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신민준(2022예술인파견지원 예술로 기획사업 참여예술가)
토론: 권은비(시각예술가)
유영봉(극단 서울괴담 연출)
정기황(시시한연구소 소장)
‘성북도큐멘타 8, 개발과 정비가 된 장소에 대한 예술적 연구와 실천을’ 마무리하며,
2022년 11월 4일(금), 성북 미아리고개 하부공간 미인도에서
‘우리는 왜 예술로 지역을 기록하는가’를 주제로 2022 성북도큐멘타 공론장을 진행했다.
공론장 발제 및 토론에 대한 내용은 유튜브
‘2022 성북도큐멘타 공론장’ 영상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 공론장 영상 링크 : bit.ly/성북도큐멘타8공론장